하원 준비 시간이면 저희 직원들이 조용히 하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어르신들 가방을 살피는 일입니다. 어떤 어르신 가방에서는 다른 분의 휴대폰이 나오고, 어떤 날은 프로그램에서 쓰던 퍼즐 조각이, 책상에 붙어 있던 이름표 자석이 나오기도 합니다. 이 글의 사례는 여러 어르신의 모습을 섞어 각색한 것임을 먼저 밝힙니다.
처음 이런 일을 겪는 보호자는 충격을 받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평생 남의 것에 손 한 번 안 대신 분인데." 맞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어르신은 훔친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르신의 눈에는 정말 자기 물건으로 보입니다
치매가 진행되면 내 것과 남의 것을 가르는 인식이 흐려집니다. 책상 위에 놓인 휴대폰을 보고 '내 휴대폰이 여기 있네' 하고 자연스럽게 집으시는 겁니다. 숨기지도 않으십니다. 당당하게 가방에 넣으시는 모습이 오히려 그 증거예요. 훔친다는 의식이 있다면 사람 눈을 피했겠지요. 그래서 저는 보호자들께 이 행동을 도덕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마시라고 말씀드립니다. 이건 병의 증상이지 인격의 변화가 아닙니다.
정말 조심해야 할 것은 물건이 아니라 대응입니다. "그거 아버지 것 아니잖아요" 하고 그 자리에서 따지면 어르신 입장에서는 멀쩡한 내 물건을 두고 도둑 취급을 받는 셈입니다. 억울함과 분노가 터져 나오고, 관계만 상합니다. 물건은 돌아오지만 마음에는 금이 갑니다.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제자리로
그래서 저희 센터의 원칙은 이렇습니다. 그 자리에서 지적하지 않는다. 하원 준비 때 소지품을 확인하고, 나온 물건은 어르신이 안 보실 때 조용히 주인에게 돌려드린다. 물건을 잃어버린 어르신께도 어느 분 가방에서 나왔는지 말하지 않는다. 두 분 모두의 자존심이 지켜져야 내일도 같은 공간에서 웃으며 지내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도 같은 원리가 통합니다. 마트나 가게에서 물건을 그냥 들고 나오시는 일이 생기면, 어르신을 나무라기보다 계산을 조용히 처리하고 자주 가는 가게라면 사장님께 미리 사정을 말해두는 편이 낫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단골 가게와 약속을 만들어 두고 마음 편해진 보호자를 여럿 봤습니다. 어르신 주머니나 가방을 확인하는 습관도 필요한데, 이때도 어르신 앞에서 뒤지기보다 옷 정리를 도와드리며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미리 해두면 도움이 되는 준비도 있습니다. 어르신 물건에 성함을 크게 써 붙이는 것입니다. 안경, 지갑, 휴대폰, 겉옷처럼 자주 섞이는 물건일수록 효과가 큽니다. 이름이 붙어 있으면 어르신 본인도 확인이 되고, 다른 곳에서 나와도 돌려드리기가 쉽습니다. 잃어버리면 곤란한 물건은 아예 외출이나 등원 때 들고 나가지 않도록 정리해 두는 편이 낫고요.
반대의 상황도 함께 알아두시면 좋습니다. 물건을 가져오시는 어르신이 있는가 하면, 내 물건이 없어졌다며 주변 사람을 의심하시는 어르신도 계십니다. 뿌리는 같습니다. 어디 두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사라졌다는 사실만 남으니, 그 빈자리를 누가 가져갔다는 설명으로 메우는 것입니다. 이때도 "아무도 안 가져갔어요"라는 반박은 통하지 않습니다. 같이 찾아드리고, 찾으면 어르신이 먼저 발견하신 것처럼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편이 낫습니다.
병의 증상이라는 걸 알아도, 겪을 때마다 마음이 무너지는 게 가족입니다. 그 마음까지 병 탓으로 다 눌러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어르신이 나쁜 사람이 된 게 아니라는 것 하나는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