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한 분이 계셨습니다. 여든이 넘으신 남자 어르신인데, 오후 세 시 무렵만 되면 어김없이 가방을 챙기고 현관 쪽으로 걸어가셨습니다. "내 발로 내가 가는데 왜 못 가게 하느냐." 직원이 막아서면 언성이 높아지고, 어떤 날은 가방을 바닥에 던지기도 하셨습니다. 미리 말씀드리면, 이 글의 사례는 어르신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 사례를 섞고 각색한 것입니다.
치매를 공부하는 분들은 이런 행동을 귀가 집착이라고 부릅니다. 보호자 입장에서는 "센터가 싫으신가" 싶어 마음이 무너지는 행동이지만, 현장에서 오래 지켜본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막을수록 강해지고, 이기려 들면 진다
처음에는 저희도 서툴렀습니다. "조금만 계시다 가세요", "차가 아직 안 왔어요" 하고 설득했지요. 결과는 늘 나빴어요. 설득은 어르신 귀에 '못 가게 한다'로만 들리고, 저항은 더 세졌습니다. 흥미로운 건 그 어르신이 현관 앞에서 늘 옛 직장 이야기를 하셨다는 점입니다. 수십 년 다닌 회사 이름을 대며 "내가 어떤 사람인데" 하셨습니다. 저는 그때 알았습니다. 이 행동은 시설이 싫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내 삶의 주인이라는 감각을 지키려는 몸부림에 가깝다는 걸요.
그래서 접근을 바꿨습니다. 귀가 욕구가 올라온 뒤에 막는 게 아니라, 올라오기 전에 움직이는 겁니다. 그 어르신이 가방을 챙기시던 시간대 직전에, 좋아하시는 퍼즐과 색칠 활동을 먼저 권해 드렸습니다. 손이 바빠지면 마음의 방향이 바뀝니다. 따님 이야기를 꺼내면 표정이 풀리는 분이라, 직원들이 일부러 따님 안부를 여쭙기도 했습니다. 물론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현관 앞 실랑이가 눈에 띄게 줄었고, 무엇보다 어르신이 화내는 시간보다 웃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덧붙이면 이런 행동은 유독 오후 늦게, 해가 기울 무렵 심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녁이 되면 인지가 더 흐려지고 불안이 커지는 현상인데, 어르신들이 살아온 세월을 생각하면 이해가 갑니다. 해가 지면 집에 돌아가 저녁을 짓고 식구를 맞아야 했던 시간이니까요. 몸에 새겨진 수십 년의 시계가 울리는 거지요. 그래서 저희는 이 시간대에 손을 많이 쓰는 활동을 일부러 배치하고, 직원들도 평소보다 어르신들 곁에 가까이 붙습니다.
가정에서도 순서는 같습니다
댁에서 해 질 무렵마다 "집에 가야 한다"고 하시는 어르신이 많습니다. 지금 계신 곳이 집인데도요. 그 '집'은 대개 지금의 집이 아니라 기억 속 어느 시절의 집입니다. "여기가 집이잖아요"라는 정답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어르신 기억 속에서는 그 말이 틀렸기 때문입니다.
순서는 센터와 같습니다. 그 시간대가 오기 전에 어르신 손과 마음이 갈 곳을 먼저 만들어 드리는 것. 빨래 개기, 콩나물 다듬기, 옛 사진 보기, 무엇이든 좋습니다. 그리고 "집에 가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면 반박하지 말고 "그러게요, 가시기 전에 이것 좀 도와주세요" 하고 자연스럽게 방향을 트는 겁니다. 거짓말을 하라는 게 아니라, 이길 수 없는 논쟁 대신 어르신의 마음이 향할 다른 자리를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참, 저희가 이런 어르신들께 꼭 하는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기록입니다. 귀가 시도가 하루 몇 번, 어느 시간대에, 어느 정도 강도로 있었는지를 주 단위로 적습니다. 감으로는 "요즘 좀 심해지신 것 같다" 정도지만 기록이 쌓이면 어느 주부터 무엇이 달라졌는지가 보이고, 그 자료가 보호자 상담과 병원 진료에서 그대로 쓰입니다. 댁에서도 달력에 동그라미 하나 치는 것이면 충분합니다.
이런 행동이 갑자기 심해지거나 실제로 밖으로 나가시는 일이 생기면 그때는 가정의 노력만으로 될 일이 아닙니다. 주치의와 상의하시고, 배회 이력이 있다면 위치 확인 장치도 준비하셔야 합니다. 그 이야기는 따로 한 편으로 정리해 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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