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자꾸 제가 돈을 훔쳐갔다고 하세요. 평생 모신 딸인데, 이제 도둑 취급을 받으니 정말 서럽습니다." 이런 상담을 받을 때마다 저는 먼저 보호자의 마음부터 살핍니다. 치매 증상 중에 가족 마음을 가장 깊게 베는 것이 바로 이 망상이기 때문입니다.
돈이나 물건을 훔쳐갔다는 도둑망상은 치매에서 드물지 않게 나타납니다. 물건을 둔 곳을 기억하지 못하니 물건이 사라진 것이고, 사라졌으니 누가 가져간 것이고, 늘 곁에 있는 사람이 범인이 되는 겁니다. 어르신 나름의 논리로는 아귀가 맞아요. 그래서 가장 가까이서 돌보는 사람이 가장 먼저 의심받는, 잔인한 역설이 생깁니다.

증명하려 들수록 수렁에 빠집니다
본능적으로 우리는 결백을 증명하고 싶어집니다. "제가 왜 엄마 돈을 가져가요, 여기 통장 보세요." 그런데 현장에서 배운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망상은 증거로 무너지지 않습니다. 통장을 보여드려도 "네가 미리 꾸며놨구나"가 됩니다. 논리로 밀어붙일수록 어르신은 온 세상이 자기를 속인다는 확신만 굳어집니다.
저희가 쓰는 방법은 싱겁게 들릴 만큼 간단합니다. 반박하지 않고, 감정을 받아드리는 것. "돈이 없어져서 속상하시겠어요. 같이 찾아볼까요?" 하고 함께 찾는 시늉을 하다 보면, 어르신 관심이 다른 데로 옮겨가며 파도가 지나가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실제로 어르신들이 돈을 두시는 자리는 대개 정해져 있습니다. 장롱 이불 사이, 성경책이나 앨범 갈피, 쌀통. 몇 군데를 알아두면 '찾아드리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범인 취급을 받던 사람이 해결사가 되는 겁니다.
예방책도 있습니다. 어르신께 지키는 재미를 드리는 겁니다. 잔돈을 넉넉히 넣은 어르신 전용 지갑을 마련해 드리고, 통장은 사본을 드려 언제든 확인하실 수 있게 하는 식입니다. 돈이 눈에 보이고 손에 만져지면 없어졌다는 불안 자체가 줄어듭니다. 실제로 지갑 하나로 온 집안의 의심이 잦아든 가정을 본 적이 있습니다.
친절이 오히려 의심을 살 때
한 가지 현장에서만 아는 미묘한 요령이 있습니다. 망상이 있는 어르신께 과하게 잘해드리면 "왜 이렇게 친절하냐, 뭘 숨기려는 거냐"며 오히려 의심이 깊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담백하게 대합니다. 칭찬과 케어를 샌드위치처럼 사이사이 끼워 넣되, 톤은 평소처럼. 잘 보이려는 태도보다 한결같은 태도가 신뢰를 만듭니다.
그리고 선을 하나 그어드리고 싶습니다. 망상의 내용이 공격적으로 변하거나, 특정 가족을 향한 의심이 생활을 위협할 정도가 되면 그때는 대화 기술의 영역이 아닙니다. 정신건강의학과나 신경과 진료에서 약물로 조절이 가능한 경우가 있으니, 증상이 심해지는 시기를 기록해 두었다가 주치의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저희도 센터에서 망상이 심해진 어르신은 관찰 내용을 정리해 보호자를 통해 병원에 전달합니다. 가족의 인내로만 버틸 일이 아닙니다.
병원에 가실 때는 한 가지 준비를 권합니다. 망상이 나타난 날짜와 시간대, 내용, 지속 시간을 달력이나 수첩에 짧게 적어두시는 겁니다. 진료실에서 "가끔 이상한 말씀을 하세요"라고 하면 의사가 판단할 재료가 없습니다. "이번 달 들어 열흘 정도, 주로 해 질 무렵, 돈 이야기"라고 하면 진료의 정밀도가 달라집니다. 저희 센터도 어르신들의 특이 행동을 날짜별로 기록해 뒀다가 보호자 편에 병원으로 보내는데, 이 기록이 약 조정에 실제로 큰 역할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도둑 취급을 받아 서러운 보호자께. 어르신이 의심하는 대상은 당신이 아니라, 병이 지어낸 그림자입니다. 머리로는 알아도 가슴이 아픈 게 당연하니, 그 서러움을 혼자 삭이지 마시고 어디에든 털어놓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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